unnamed.jpg


밀양, 그곳에 사람이 산다.

 

2014.01.03~2013.01.29. 하자센터 신관 허브커뮤니티갤러리


(작가의 말) 도시에서 태어나 2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아가는 내게 밀양의 산골 마을은 무척 다른 세계였다. 담장과 대문이 허술하고 안과 밖의 경계가 느슨한 시골집들,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는 ‘최소한의 절차’(내 상식에서의)도 없이 그저 문 열고 들어가 “아지매요!” 부르면 “하이고, 어서 오이소!” 하고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참 낯설었다. “밥 묵은나?”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제.” 가는 곳마다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도 그냥 가면 서운하다며 찔러주는 손길을 끝내 뿌리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사진 찍는 아가씨, 대학생(애가 둘이나 있는 마흔의 아줌마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말은 없다!)이 왔다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닌데 냉커피와 막걸리가 돌고, 방금 쪄낸 옥수수, 밭에서 따온 수박, 빛깔과 향기, 맛까지 황홀한 자두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난여름, 내가 맞닥뜨린 밀양의 모습은 머릿속으로 그리던 것과 많이 달랐다. 밀양으로 나를 이끌었던, SNS에 떠돌던 사진과 영상들, 송전탑 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된 그곳, 필시 처절하고 긴장된 분위기,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마주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사가 잠정 중단되었지만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할매들은 고추를 따고 깻잎을 따고 깻단을 묶으며 꿋꿋이 일상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농성장 옆 자투리 땅에도 상추, 호박을 길러 먹는단다. 공권력과 한전의 폭압에 치를 떨면서도 ‘사람이 제일 중요한기라, 설마 사람 죽이는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나?’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모두가 기억하듯이 지난여름도 몹시 더웠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전력 대란을 걱정하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인구의 절반이 북적대는 거대 도시에 살면서 전기가 끊길지 모른다는 것은 무척 공포스러웠다. 초고압 송전시설이 일부에 피해를 주더라도 모두가 전기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나 역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밀양에서 보니 발전소와 송전시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피해가 너무 크고 이들의 희생으로 얻는 전기의 혜택이 대도시와 대기업에 집중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스위치를 눌러 손쉽게 전기를 소비하지만, 이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어 어떤 경로로 내게 오는지 모르는 현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 여 부산 고리에만 핵 발전소가 몇 개나 있는지 압니껴?” 
밀양의 어느 마을회관에서 칠팔십대의 어르신들이 원자력 발전의 폐해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시골의 할매, 할배들이 진지하게 원자력 발전소니, 신재생 에너지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놀라웠고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밀양의 송전시설이 미래에 큰 재앙이 될 위험한 핵발전의 확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무척 걱정스러웠다.

전기가 부족하여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면 그런 줄 알고 아껴 쓰라고 하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왜 부족하고 누가 얼마나 많이 쓰는지, 어디서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전기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누구인가? 누가 내 집, 내 일터, 내가 사는 도시의 전기 버튼을 쥐고 있는가? 생각하니 나라 전체의 전기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와 공기업의 권력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들은 과연 공정한 절차와 방법으로 순수하게 공익을 실천하고 있을까? 작년에 잇따라 터진 원전 비리를 떠올려보면, 대기업에 적용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하여 특혜를 주고 그리하여 전기 과소비를 부추기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밀양을 다녀오면서 마을을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탑 피해의 심각성,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되었다. 애초에 신 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려던 계획에서 신 안성 구간의 사업이 폐지되었는데 북경남 구간은 고집하는 이유,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핵발전을 늘리지 말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졌고 새로 지은 신 고리 발전소는 위조부품으로 당장 가동할 수도 없는데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는, 그래도 꼭 필요하다면 송전시설을 땅밑으로 묻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정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국책사업’의 위력은 이러한 정당한 의문과 요구를 간단히 무시한다. 경과지 선정, 사업추진, 공사를 진행하는 전 과정에서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거나 공감대를 얻으려 하지 않았고 민주적인 토론의 절차도 없었다. 공사를 밀어부치고 용역을 앞세워 욕설과 폭행을 가했다. 정부도 나서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그리고 국무총리가 밀양을 찾았다. 대외적으로는 주민들과 ‘소통’하겠다고 했지만, 지역의 유림, 상공인 등 직접 피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손을 잡고 협조를 구했다. 보수 언론들은 한전과 정부 편에서 공익을 거스르는 지역 이기주의, 외부세력으로 몰았고 모든 문제를 보상, ‘보상금을 더 타내기 위한 것’으로 축소, 변질시켰다. 장관과 국무총리가 다녀가는 대국민 ‘쇼’가 끝나자 곧바로 수천 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하고 송전탑 반대 대책 위원회를 탄압했다. 갖은 방법으로 주민들을 포섭하고 피해가 심각하지 않은 대상과 합의한 뒤 주민 대부분이 합의한 것처럼 퍼뜨려 지역 공동체를 갈라놓았다.

어르신 두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이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집단 괴롭힘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한전, 경찰이 한편이 되어 송전탑 반대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지속적으로 심리적, 물리적 고통을 주었고 언론이 이를 추종, 동조하여 분위기를 돋우었다. 그리고 우리,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에너지 자급률이 고작 3.3%인 서울에 살면서, 자신의 안락한 일상을 위해 사람 사는 마을에, 논밭을 가로질러 초고압 송전시설을 짓는 현실을 외면한 우리도 암묵적으로 힘센 그들 편에 섰던 게 아닐까?

희망버스와 함께 넉 달 만에 다시 밀양을 찾았다. 길을 막아서는 경찰들과 몇 번의 충돌 끝에 송전탑 건설 현장에 올랐다. 철통 같은 경찰 벽 너머로 공사현장을 지켜보던 어르신들이 경찰이 마을을 점령한 이후로 현장에 이렇게 가까이 오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9년간 계속된 밀양의 싸움에서 주민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특히 지난가을부터 정부가 개입하고 경찰이 들어오면서 폭력의 수위가 도를 넘고 인권이 심각하게 짓밟히고 있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는 말이 사무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보상이 아입니더. 할래야 할 수도 없고. 송전탑이 여기 들어오면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데, 자손들에게도 물려주게 되는데, 그걸 무슨 수로 얼마로 보상해줄 수 있습니꺼? 돈 몇 푼 받아 어데 가서 뭐하고 살겠능교? 땅 없이, 농사 안 짓고 우예 살라합니꺼”
밀양 싸움 9년, 이들의 바람은 지금 이대로, 살던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다. 왜 송전시설을 지어야 하는지, 전기 소비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생태계와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발전 방식이 과연 올바른지 묻는다. 명분도 없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더 조화로운 대안은 없는지, TV 토론이라도 해서 속 시원히 답을 얻고 싶단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조금 익숙해진 밀양의 들판을 바라보며 문득, 누구나 아는 노래, 말문이 막 트일 때부터 엄마를 따라 불렀던 ‘고향의 봄’이 생각났다. 그리움, 애틋함, 노래를 불러주던 엄마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의 나이가 된 지금도 ‘고향’이란 단어는 여전히 낯설다.
그러나 산과 들, 나무,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지며 ‘고향을 지키며 이대로 살고 싶다.’는 밀양 어르신들의 말씀을 떠올린다. 
한평생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할매들이 나무 같다. 땅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선 나무. 길고 힘겨운 싸움에 지지 않고 맞서는 할매들의 힘과 여유는 수십 년, 수백 년, 조상 대대로 깊이 뿌리내리고 살아온 안정감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밀양, 765000볼트 초고압 송전선이 지어지는, 폭력으로 얼룩진 그곳에 사람이 산다.


unnamed (1).jpg

‘사진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고 했던 선배의 말을 기억한다.
치열하게 현장을 누비지 못했고 현실을 보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틈틈이 보고 듣고 느낀 밀양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두 아이와 함께 지내는 내 일상이 소중하듯이 밀양 사람들의 일상도 지켜질 수 있기를, 그들의 바람대로 ‘지금 이대로’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국가의 폭력, 하루하루 올라가는 송전탑이 삶을 어떻게 뒤틀어 놓는지 가까이에서 긴 호흡으로 기록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밀양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전시회 준비를 하며 새해 소망 빌어 본다.
밀양 사람, 밀양으로 길이 보전하세!

전시공간을 마련해주시고 도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14. 1. 빈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