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지능_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H. 가드너/문용린譯(2002, 김영사)

<다중지능>, H. 가드너/문용린,유경재譯(2007, 웅진지식하우스)

 

이경규, 김연아를 분석한다.

읽다보니 두 권을 읽게 됐다. 2002년도 판이 좀 더 저자의 기본 이론에 충실하다고 한다면 2007년도 판은 교육이나 직업에 응용되는 이론을 그리고 있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2002년도 판을 먼저 읽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IQ검사에 익숙하고, 또는 그리 높지않은^^;; 자신의 지능지수에 실망한 사람이라면, 게다가 그것에서 더 나아가 삶에 자신감까지 상실한 사람에게는 암흑 속에서 비쳐오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이론이다. 저자의 기본 가설은 지능지수라는 것은 기존의 IQ검사처럼 단일 지능으로 측정해서 그 점수에 따라 일렬종대로 수치화할 수 있는 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단일지능(일반 지능으로서의 g)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IQ검사의 기원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비네라는 사람에게까지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당국은 학습지진아와 같은 특수아동을 위해 지능을 수치화할 수 있는 측정도구를 계발하도록 요구했다. 물론 비네는 지금의 IQ검사와 같은 효율적인 검사도구를 계발하고 실용화한다. 그런데 지능지수의 수치화는 인간이 단일한 하나의 일반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측정의 목적은 언어와 논리수학지능을 측정하는 게 주 임무가 된다.

그런데 저자는 인간의 지능은 언어, 논리수학지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지능은 적어도 일곱이나 여덟개로 구분된 능력들의 모자이크다. 즉 단일한 지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뇌 속에는 적어도 일곱개의 지능이 동일한 주권을 가지고 배열돼 있다는 것이다. 지능은 나뉘어져 있으며 따라서 지능검사는 나뉘어져 있는 각각의 것들을 그에 걸맞는 방식으로 측정해야만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

 

그럼 가드너가 구분한 일곱지능에 대해서 알아보자. 첫째는 언어지능이다. 둘째는 논리수학지능. 이 두 지능이 바로 현재의 IQ검사를 통해 측정되는 것이다. 대학입시인 수능시험도 당락을 결정하는 언어영역이나 외국어영역, 수리탐구영역이 증명하듯이 IQ검사와 동일한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이 두 지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사회는 이 두 지능을 극대화시키는, 또는 극대화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종적으로 줄세우는 사회인 것이다. 세째 지능은 음악지능이다. 음악지능이 뛰어난 사람으로는 모짜르트나 한국의 장한나, 사라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자폐아와 같이 정상적인 언어, 논리수학 능력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서 뛰어난 피아노 연주능력을 볼 수 있다. 네째 지능은 공간지능이다. 건축가나 화가등이 이 지능이 뛰어날수록 유리하다. 택시 드라이버도 이에 속할 것이다. 다섯 째 지능은 운동지능이다. 2009년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운동지능이 높은 대표적인 사람은 단연 김연아가 될 것이다. 일본 요요기 경기장에 애국가를 울려버린^^(쿨쩍;;) 김연아의 연기는 스포츠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린 운동지능의 꽃을 보여준다. 여섯째 지능은 대인지능이다. 대인지능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조절하는 지능을 말한다. 대인지능을 생각할 때 내가 주의깊게 지켜봐 온 사람은 개그맨 이경규씨다. 그는 50세가 다 된 장년층으로 또래의 코미디언이 TV에서 오래전에 종적을 감춘 데 비해 끝까지 살아 남았다. 그 수많던 왕년의 스타 코미디언과 이경규씨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장수의 비결이었을까? 그의 가장 큰 강점은 항상 다수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신선함을 항상 유지한다는 것이다.  TV를 틀면 매번 나오는 그이지만 한마디로 지루하지가 않다. 가령 현재의 젊은 개그맨 중에 조혜련씨와 비교해보자. 과장된 얼굴표정과 몸짓으로 초창기에 큰 웃음을 선사했던 이 재능있는 젊은 개그맨은 언제부터인가(물론 나 개인의 생각이다) 지루하게 느껴지게 됐다. 처음에는 웃음으로 다가왔던 액션이 비슷한 포맷으로 반복되다보니 신섬함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그녀는 항상 혼자 개그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집단적으로 개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도중에 과도한 액션으로 끼어들거나 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포맷이 한정되어 버린다. 이에 비해 이경규씨는 절대 혼자 하지 않는다.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한번 상기해 보라. <남자의 자격>이나 <복불복쇼>나 모두 새론운 인물들과 단체로 찍는 형식이다. 즉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도 함께 묻어가면서^^ 웃음의 포맷을 만들다 보니 항상 참신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경규씨가 과거의 눈알굴리기나 "자연스럽게~"와 같은 일인 위주의 개그형식을 고수했다면 그는 롱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짜증나겠는가? 허구헌날 나와서 십여 년간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면....^^;;

마지막 일곱번 째 지능은 자성지능(자기성찰지능)이다. 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심리학자나 상담가가 되면 좋을 것이다.

 

위 일곱지능은 전부 분할돼 있다. 인간은 모두 위의 일곱지능에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운동지능이 높은 김연아 선수가 논리수학지능까지 높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대인지능이 높은 이경규씨 역시 마찬가지다(참고로 모 TV프로그램에서 측정한 이경규씨와 박명수(<무한도전>에 등장하는 바로 그 거성 박명수^^)씨의 IQ는 97이었다. 박경림씨도 마찬가지다. IQ97이 100을 기준으로 하는 검사에서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50을 넘는 맨사회원들도 있는걸 봐선 그냥 보통의 평범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경규씨와 박경림씨의 대인지능을 보라. 결코 평범하지 않다. 박명수씨의 받아치는 순발력도 그의 언어지능이 특출나게 높은 것이 아닌가 추측케 한다. 각 지능은 독립적이며 인간은 높은 지능과 낮은 지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지능검사는 언어, 논리수학지능, 두 지능에 근거해 인간을 한 줄로 세우는 우를 범했다. 이런 지능검사로는 또 다른 김연아의 운동지능이나 또 다른 이경규의 대인지능은 조기발견돼서 키워지기 어려운 것이다. 각 지능은 고유한 능력이다. 지능들간의 우열은 없다. 저자는 묻고 있다. 언어, 논리수학지능은 지능이라고 말하면서 왜 음악지능은 지능이라 말하지 않고 재능이라고 말하느냐고.... 아인슈타인이 논리수학재능이 아니라 논리수학지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장한나도 음악재능이 아니라 음악지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

 

기존의 지능검사는 사람을 소수의 지능으로 측정해서 분류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저자는 지능검사는 사람을 분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교육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고등학교 교실을 한 번 떠올려 보자. 수학시간.... 칠판에 문제 다섯 개 정도를 적어 놓은 수학 선생, 일명 독사(학생들을 하도 옴팡지게 패서 붙은 별명)는 눈을 부라리고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다. "5번, 15번, 25번, 35번, 45번 앞으로 나와~~!!!" X같은 15일이라 연달아 걸린 재수없는 학생들은 매서운 눈의 독사 앞에서 칠판에 적힌 문제에 각각 메달려 진땀을 빼는 것이다. 물론 문제를 풀지 못 한 학생에게는 개X팔림과 함께 몽둥이 찜질이 기다리고 있다. 너무도 익숙한 학창시절의 이 광경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언어, 논리수학지능에 맞춰진 교육 프로그램은 학생들을 일곱 개의 지능에 강, 약점을 지닌 각각의 개성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지능에 강압적으로 맞추려는 기계들로 봐라봤던 것이다. 지은 죄도 없이 죄인 취급을 받은 수많은 학생들은 논리수학지능이 뛰어난 몇몇의 학생들을 위해 짜맞춰진 교육프로그램에 들러리를 선 수많은 숫자에 불과했다. 이들은 자신의 재능, 자신의 높은 지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논리수학점수에 맞춰 대학과 사회에 배치되며 생업전선에 내 던져지는 것이다. 이들은 한 번도 개인적인 일대일 교육을 받지 못했다!!!(심지어 그들이 받았을 개인과외도 수학, 영어와 같은 언어, 논리수학지능 교육에 국한돼 있었을 확률이 높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집단교육이 아니라 일대일 개인교육이 제공돼야 할 존재다. 교사는 일곱가지 지능에 기초해서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해야 하며 그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사회단체는 직업교육(예를 들면 한국사회에서는 "하자센터"???)과 연결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지능은 유전인자와 성장 환경과의 조합이듯이 개인능력과 사회와의 공동 합작물인 셈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각각의 장점이 다르고 따라서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우리는 협력해야 한다. 내 IQ가 134라서 우쭐하다느니 78이라서 우울하다느니 하는 얘기는 더이상 집어 치워 버리자. 안간은 단일 지능으로 서열화될 수 없다. 인간은, 특히 한국사회는 학생을 한번도 인간답게, 개성있는, 강,단점이 있는 지능을 지닌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2009년도 다 가고 있는 현재, 일제고사를 강행하는(물론 언어, 논리수학지능으로 인간을 서열화시키는) 이 정부의 교육지침에 용기있는 아이들은 자연학습체험으로 맞서고 있다. 답답하고도 눈물나는 일이다.

 

언어, 논리수학지능만 높은 인간형을 우리사회의 모델로 삼아서는 안된다. 서울구치소에 가보라!!! 앞의 두 지능이 높을 서울대학교 출신의 수갑 찬 경제사범들이 수두룩하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두 지능조차도 도덕성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즉 도덕성은 일곱개의 지능과는 또다른 가치이다. 지능과 도덕성이 잘 모자이크된 인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