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단 인트라에 올린 것을 옮깁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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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

- 기형도

 

‘30대’, ‘작가’가 ‘굶어’ 죽었다. 우선 애도하자. 너무 먹먹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자. 개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우리 주변에 이미 수많은 최고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가증스러운 존재인가. 짧게 스쳐간 생각은, 그와 내가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그래도 ‘일거리’가 있어서 아직까진 굶고 있지 않다고 안심했다. 요즘 우리는 '일거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모든 죽음은 순수하지 않다. 사람들은 죽음의 원인을 부검하듯 객관적으로 탐구하려 하겠지만 사실 죽음을 해석하는 방식들을 둘러싸고 수많은 인정 투쟁의 상황은 만들어진다. 최고은씨의 죽음은 앞으로 ‘청년’, ‘문화예술’, ‘작가주의’ 등등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할 것이다. 그래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녀를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기억을 재구성하는 논의들은 이미 시작되었다. 어느 신문에서 유명 영화감독은 인터뷰(http://bit.ly/h6svNC)를 통해, 몰락한 영화계의 구조적 한계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시장적 상황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이는 꼭 문화예술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20대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영화계만 놓고 본다면 이러한 죽음은 영화 스탭 모임인 10년전만 ‘비둘기둥지’의 활동에서부터 예고되었으나, ‘무시’ 해왔던 일이 발생한 것 뿐이다. 비교적 진보적일 것이라고 착각되었던 감독도 스탭을 착취하는 것에는 예외 없었다(참조 동영상 빅파이 http://bit.ly/glKUcM). 이 문제에 있어서 한국 사회의 진보도 보수도 모두 세대를 착취해왔다. 문화계의 활동가들도 예술가를 꿈꾸는 신진 작가들도 문화산업의 역군들도 모두 착취의 대상이었다. 모두 희망을 담보로, 청춘을 착취하였다. 문화예술계는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착취하는 공장이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이런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김영하(http://bit.ly/eo0Myj)와 소조의 논쟁 중, 이미 ‘엄친아’가 된 김영하의 입장은 짜증나지만 현실에 기반 한 세상에 닳고 닳은 선배의 입장에서 귀중한 조언이다.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외치면서 가난이 예술가의 창의성의 기반이고, 그래서 희망은 조금 착취되어도 된다는 것을 낭만적으로 스스로 학습한 것은 책임이다. 마치 아이돌이 되고 싶어 연습생 착취의 굴레에 속박되는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선택이 ‘당분간’ 낭만적인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예술과 먹고살기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길 권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조금이라도 바꿔야 할 것이다.

 

소조의 선언적인 이야기(http://bit.ly/hqhqvJ)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복잡하게 말하지만, 내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그래도 예술은 지켜야하지 않겠느냐? 는 내용이다. 물론 바라는 바이지만, 과연 ‘어떻게’ 라는 말이 빠져서, 냉소적 주체인 김영하가 오히려 설득적으로 보인다. 이에 김사과의 글 ‘무엇을 할 것인가(http://bit.ly/dVHPZr)’는 살아남은 젊은 작가들의 입장과 진정성을 보여준다. 예술을 위해 싸우고 연대하자는 이야기. 좋은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는 보낼 수 있다.

 

최근 청년유니온 등의 20대 당사자 운동, 두리반 등의 청년진보들과 비슷한 이야기다. 좋은 이야기인데, 만만치 않은 이야기이다. 이제는 늙어버린 선배세대의 실패한 운동과 어떤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최소한 몸과 마음을 바꾸어 투신했던 선배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쿨’하거나 가벼워보인다. 혁명은 멋있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예술가들이 나서서 연대를 하자는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구조의 문제를 쉽게 보기엔 적은 우리보다 너무 강하다. 또는 구조에만 문제를 돌리면 벽에 부딪혀 자조할 수 밖에 없다. 김영하-소조-김사과의 논쟁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논쟁일 뿐이고, 어느 글도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논쟁을 관람하는 것도 참여하는 것보다도, ‘뭐라도 쫌 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거나 현실적일 수 밖에 없다.

 

우선 현실을 인정하자. 신자유주의 시대에 시장에 봉사하지 않은 예술은 ‘잉여’에 가깝다. 아니, ‘예술’이란 잉여이다. 잉여의 가치에 대해 당위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난 하자서밋에서 잉여를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아도 예술은 있어 보이니까, 새로 바뀐 문화부 장관까지도 이해하며 통탄해준다. 하물며 1등신문도 껴들어서, ‘예술인 복지’에 관한 담론이 앞으로 활발해질 것이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어쩌면 좌와 우가 모두가 동의할 수도 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죽음 덕분에 예술인들의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는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게 구조를 변화시키는 근본적 대안인지는 모르겠다. 또한 복지란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당연한’ 것은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나누는 일에는 책임이 수반된다.  과연 예술가는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자존심 강한 많은 예술가들은 여전히 ‘작가’로 남고 싶어한다. 사회적인 존재라기 보다는 예술적 영혼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우리 사회가 예술에 대해 무지하고 저속한 사회이기에, 그래서 세상이 우릴 몰라준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지난 몇 년 동안의 '작가들'의 논리였다. 예술가들이 국가와 문화재단에 자신의 예술적 창작 활동 지원을 요구했던 것은 ‘그들만의’ 권리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 논의들은 스스로 도움이 없으면 예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의 고백이었다. 대중과 괴리된 것은 예술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고. 예술은 결코 변하지도 않았다. 지난 시기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의 무력함은 구조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술가들 스스로가 연대하기보다는 자기관리하며 함께하기보다 경쟁 속에서 홀로 살아남으려 했던 헤게모니의 실천자들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 살아남은 몇 사람들이 예술을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대중들은 그들만의 문화/예술계와 다른 서비스 좋은 대중문화산업을 선호하게 된 것도 한 흐름이었다.

 

그래도 문화/예술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몇몇 살아남은 문화/예술인들이 그 정신을 이어줄 것이라 믿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마저도 이미 흔들렸다. 

 

30대 최고은의 죽음은 어쩌면 ‘세대착취’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문화가 풍요로웠던 시대 90년대에 문화의 수혜자로 자란 현재 30대, 20대는 문화강국이 지속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며, 스스로 자라왔다. 물론 김영하처럼 성공한 사람도 드물기는 하지만, 더 이상 문화/예술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후배세대는 알았어야 했다. 자신의 능력보다는 부모가 물려줄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하여야했다. 대부분 그런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 문화예술계의 양극화도 이미 발생한 일이다. 능력보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게 장땡이다.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사회지도층’이 되어서 그들에게 최소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하는 것이 현 시대의 가장 낙관적인 전망일 수도 있다. 산업적 착취구조 뿐 아니라, 계급적, 세대적 착취구조 안에 이미 문화예술계는 포섭된 상황이다.

 

그동안 문화예술계는 착취의 구조에 무관심하고 싶어 했다. 가난한 삶은 ‘간지’나는 삶이 아니기에 스스로의 삶을 미학화 하려 했다. 이런 미학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존심마저 상처받으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다. 예술이 삶을 미학화 할 수 있다는 낭만적인 기대마저 버리기엔 우리의 삶은 이미 팍팍해졌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 문화-예술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살자’는 하자센터-노리단의 구호는 철부지 아이들의 외침과 다르지 않다. 제발 그러고 싶지만 정말 힘든 세상이다. 하고 싶든, 하기 싫든 일을 하고 싶지만 기회도 없다. 필요한 건 점점 많아지고, 먹고 사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 세상이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하며 먹고살자’ 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어 먹고살자’로 바꾸자는 것이다.

하자센터가 몇 년 째 실험하고 있는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이란 기획은 앞의 대답을 위한 준비단계인지 모른다. 문화예술을 버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시장에서 혼자 살아남기 힘들다면, 방법은 우선 뭉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문화예술을 하기 위해 사회적기업이란 전술은 때론 불가능한 작전처럼 보이거나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어떻게든 생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한 축인 것이다. 물론 ‘어떻게든’에 사회적기업이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외의 새로운 방법들을 발명해야 할 것이다. 위기 속의 창의가 발휘되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착취적인 문화예술판에서 스스로 월급을 버는 경험은 한국사회에서는 기적과 같다.

 

무엇보다 시장에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 난 예술가인데, 왜 홍보와 영업이 필요하지. 예술가는 좋은 작품으로 말해야하지 않는가? 등의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하기 싫더라도 시장과 소통해야 하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예술적 자존심은 상처받을 수 있고, 문화적 가치도 훼손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옆에 있는 누군가와 같이 살기 위해서 잠시 참을 필요가 있다. 관민산학의 복잡한 이해관계자와 얽혀있으며 우리 뜻대로 세상이 처음부터 움직여지지는 않는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이 것이 그동안 하자센터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잘해온 ‘일’이기도 하다.

 

망자가 된 최고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의 죽음이 더 야속하게 느껴진 것은 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스스로 고립을 선택 했는가이다. 조금만 더 찾아보면, 분명 도와줄 사람이 있었을 텐데,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조금 더 폐를 끼쳐도 되었을 텐데. 이미 혼자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위해선 서로 민폐를 끼치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이러한 연결이 나는 ‘사회적 생태계’라고 생각한다.

 

노리단의 최근 사업들은 그러한 생태계들을 만드는 초기적인 작업이다.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더 민폐를 끼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른 세대를 잘 만나는 방법이다. 주민을 초대해서, 그들을 강사로 만들어보는 경험.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보는 경험.' OO은 대학'은 청년세대가 다른 세대를 잘 만나는 방법을 보여준다. 블라스트비트는 기회와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 안전하게 시도해보고 실패를 하며 소소하게나마 성취감을 맞볼 수 있는 생태계를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사업들은 청년들에게 ‘의존’의 능력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의존만하는 사람이 아닌, 의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그래서 하자의 생태계는 좀 더 포용적이거나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씨즈와 하자는 청년 사회적기업가 양성센터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가능해진다면 하자 생태계는 미약하나마 사회적 생태계를 실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태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람들의 순환이 더 중요하다. 10대, 20대, 30대 등이 어떻게 연결하여 순환할 수 있을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민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우선은 이해관계자들이 많아야 한다. 예의바른 무관심을 포장한 배려와 돌봄을 넘어 생태계에 대한 욕심들이 발휘되길 바란다. 그 안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욕심이 아닌, 어떻게든 생태계를 같이 책임지겠다는 자세들이 근거였으면 좋겠다. 혼자 살기 힘든 세상을 알았다면, 그래서 같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조금은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누구와든', '무엇이든', ‘함께’ 하면 좋겠다.

 

-sis